“손목 꺾고 낭심 차고 이런 건 수련이 없으면 실제 상황에선 소용없다”, "골든타임 10초를 벌고, 힘껏 도망쳐라” 최근 흉기 난동 사건이 잇따르자 호신술 교육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일 성동구청이 마련한 '생활 호신술 안전교육' 모습.(사진=김민진 기자 enter@)
“하나, 그렇지” “둘, 그렇지”…”아홉, 오케이” “열, 오케이” “박수”
“계속 막아, 막아야 해”
“왼손으로 밀고, 오른손으로 찍어!” “가방 들어, 원투 원투”
일요일인 지난 20일 정오. 서울 성동구 마장동 성동생명안전배움터 1층 실습장엔 가방 부딪히는 소리와 구령 소리가 울렸다. 20~30대 여성들이 대부분인 교육생들은 안간힘을 써서 강사가 휘두르는 흉기를 막고, 도망치는 훈련을 반복했다.
실습 중 웃음소리가 자주 들렸지만, 강사의 공격이 반복되고 점차 거세지자 일대일 실습하는 교육생의 얼굴은 빨개져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강사는 교육생을 실전 같은 극한으로 몰아붙였고 실습장엔 잠깐씩 긴장감이 흘렀다.
“방어는 침착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가방을 두 손으로 잡고 타이밍 맞춰 뻗어야 칼이 못 들어와요. 정신 바짝 차리고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으면 상황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말이 쉽지, 실전에서는 어려워요. 위험한 상황을 미리 연습해 두지 않으면 실제 상황에선 얼어붙어 몸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호신술 강의와 실습을 맡은 한국아르니스협회 호신술센터의 전성용 사범(협회장)은 “손목 꺾고 낭심 차고 이런 건 수련이 없으면 실제 상황에선 소용없다”며 “골든타임 10초를 벌고, 힘껏 도망쳐야 생존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꾸준히 수련하고 힘을 기른 전문가가 아니면 작정하고 달려드는 상대를 제압하거나 대항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전 사범은 “방어는 도구를 이용해야 하고, 그러니 항상 가방을 휴대하거나 바로 꺼낼 쓸 수 있는 쿠보탄과 같은 호신 도구 하나쯤은 꼭 들고 다녀라”고 했다. 호신용 전자 호루라기 역시 도망에 유용한 도구다.
전 사범은 “다급한 상황에서 언제 핸드백에서 후추 스프레이 꺼내서 뿌리겠나. 호루라기 소리에 누가 도와주러 온다고 생각해도 오산이다. 위해를 가하려는 상대가 큰 소리에 당황했을 때 도망치기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젠 안전하지 않은 장소에서 이어폰을 꽂고 있거나 휴대전화에 정신이 팔린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날 20명의 교육생은 전 사범과 호신술센터의 고경아 여성 사범의 조로 나뉘어 1시간 30분 넘게 실습했다. 실습에는 훈련용 막대가 사용되기도 했지만, 강사는 실제 흉기와 똑같은 모양과 색상의 모형 칼로 일대일 훈련을 반복했다.
전 사범은 “실제 상황에서는 은색 흉기를 보면 사람들은 얼어버린다”며 “대처하려면 훈련이 돼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내가 자주 다니는 길에서 예상되는 상황을 가상으로 설정해 반복적으로 시뮬레이션해야 하고, 급소를 보호하는 적극적인 방어 훈련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흉기 공격에서 살아남으려면 경동맥, 기도와 같은 급소와 심장, 폐, 비장과 같은 주요 장기를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가방으로 방어할 때도 가방을 가슴 높이까지 올리고 있다가 타이밍 맞게 팔을 뻗었다 거둬들여야 신속한 방어가 가능하고,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선 쿠보탄(볼펜 모양의 호신용 열쇠고리. 송곳으로 내리찍듯 상대방을 찌르는 용도로 사용된다) 같은 호신용품으로 쇄골이나 가슴골, 안와(눈구멍) 등 급소를 찔러야 하는데 이 상황을 미리 가정하고 연습하지 않으면 실제 상황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고경아 사범은 “흉기 난동범은 흉기를 위에서 찍거나 아래에서 찌르는 경우가 가장 많고, 오른손잡이가 많기 때문에 이런 걸 고려해서 방어 훈련을 해야 한다”고 했다.
교육은 중간중간 웃음이 터지며 즐겁게 진행됐지만, 현실은 심각했다. 이날 함께 참석한 최재경(54)·최승희(50) 부부는 “요즘 무차별 흉기 난동과 같은 사건이 많아 교육을 신청했는데 생각만 했던 것과 실제 몸으로 부딪쳐 해보는 건 정말 다르다는 걸 느꼈다”며 “현실이 씁쓸하지만, 기회가 되면 고3인 딸에게도 꼭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은 성동구청이 구민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생활 호신술 안전교육’ 두 번째 날이다. 성동구는 최근 도심 흉기 난동과 같은 ‘묻지마 범죄’가 잇따르자 발 빠르게 호신술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주말인12일과 20일, 27일, 다음달 2일 4차례에 걸쳐 회당 15명씩 총 60명만 신청받기로 했지만, 이달 초 교육 공지가 나가자 접수 신청이 빗발쳤고, 결국 회당 인원을 20명으로 늘려 80명을 받았다. 그마저도 접수 당일 6시간 만에 마감됐다.
호신술 교육의 높은 인기는 엄연한 현실이다. 지난해 ‘부산 돌려차기 사건’에 이어 최근 신림역과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에 이르기까지 무차별 묻지마 범행으로 인해 ‘안전지대가 사라졌다’는 공포는 전 국민에게 확산하고 있다. 직장인 서민지씨(28)는 “출퇴근으로 매일 왕십리역 부근을 지나는데 최근 왕십리역 살인 예고 사건을 보고 많이 놀랐다”며 “그래서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호신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학생 문가현(20)씨는 “평소에도 호신술에 관심이 많아 유튜브 등을 봤지만 현실에서 가능할지 의문이 있었다”며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호신술을 계속 배우고 싶다”고 했다.
성동구는 호신술 교육 상설화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강성호 성동생명안전배움터 센터장은 “교육생들의 반응과 평가를 종합해 보고 호신술 교육을 정규과정으로 편성할지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묻지마 범죄'가 잇따르자 성동구는 긴급하게 호신술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사진은 한국아르니스협회 호신술센터의 고경아 사범이 교육생을 가상으로 공격하는 모습.(사진=성동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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